[부산의 역사] 선사시대 부산의 생활과 문화

선사시대 부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부산의 역사는 바다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의 역사는 문자 기록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부산을 떠올리면 항구, 시장, 해운대, 광안리, 산복도로, 원도심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오래전 부산에는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가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고,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와 곡식을 이용하며 살았습니다.

부산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자료는 패총(貝塚)입니다. 패총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와 생활 흔적이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진 유적입니다. 쉽게 말하면 조개무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쓰레기장이 아닙니다. 패총 안에는 조개껍데기뿐 아니라 토기 조각, 석기, 뼈도구, 동물 뼈, 화덕자리, 집자리, 무덤 흔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밥상과 도구, 생활 방식, 장례 문화까지 알려 주는 고고학의 보물창고입니다.

동삼동 패총, 부산 선사시대의 대표 유적

부산 선사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은 영도구에 있는 동삼동 패총입니다. 동삼동 패총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패총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1929년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견되었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박물관 등 여러 기관이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이 유적은 기원전 5500년 무렵부터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오랜 기간 형성된 대규모 복합 유적으로 밝혀졌습니다. (heritage.go.kr)

동삼동 패총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 부산 신석기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석기, 골각기, 조개로 만든 장신구, 의례와 관련된 유물 등이 나왔습니다. 주거지와 화덕자리, 독무덤도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은 동삼동 일대가 단순히 조개를 먹고 버린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음식을 만들고, 죽은 이를 묻고, 공동체를 이루었던 생활 공간이었다는 뜻입니다.

바다를 건넌 사람들, 교류의 흔적

동삼동 패총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해양 교류의 흔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일본 규슈산 흑요석과 조몬토기 계통의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흑요석은 화산암의 일종으로, 날카롭게 깨지는 성질 때문에 선사시대 도구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산 영도에서 일본 규슈산 흑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대목은 부산의 정체성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부산은 근대 이후 갑자기 국제항이 된 도시가 아닙니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물건, 기술과 문화가 오가던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부산항의 큰 배와 컨테이너는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지만, 그 깊은 바탕에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선사인들의 해양성이 놓여 있습니다.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만나는 신석기 부산

선사시대 부산을 직접 이해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은 동삼동패총전시관입니다. 이곳은 부산시립박물관 소속 전시관으로,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석기시대 생활문화를 소개합니다. 제1전시실은 신석기시대 문화와 동삼동 패총 발굴의 역사를 다루고, 제2전시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 동삼동 사람들의 사계절 생활을 보여 줍니다. (부산시립박물관)

전시관을 둘러보면 선사시대가 막연한 과거가 아니라 생활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토기는 음식을 담고 끓이는 도구였고, 낚싯바늘과 작살은 바다에서 먹거리를 얻는 기술이었습니다. 조개팔찌와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향한 감각을 보여 주며, 무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의식한 공동체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강서구 범방동 패총, 낙동강 하구에 남은 신석기 사람들의 삶

부산 선사시대를 동삼동 패총만으로 설명하면 부족합니다. 부산 서쪽, 강서구에도 중요한 선사 유적이 있습니다. 바로 범방동 패총입니다. 범방동 패총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일대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입니다. 이곳에서는 무덤, 화덕자리, 집석유구, 토기, 석기, 골각기, 자연 유물 등이 확인되었고, 인골도 발견되었습니다. 형성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방동 패총이 중요한 이유는 낙동강 하구에 살던 선사인들의 생활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낙동강 하구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입니다. 이런 곳은 먹거리가 풍부합니다.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를 모두 얻을 수 있고, 조개와 어패류도 많습니다. 습지와 갈대밭에는 새와 동물도 모입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낙동강 하구는 먹거리의 창고이자 이동의 길이었습니다.

동삼동 패총이 영도 바닷가 신석기 문화를 보여 준다면, 범방동 패총은 낙동강 하구권 신석기 문화를 보여 줍니다. 하나는 바다를 향한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생활입니다. 이 두 유적을 함께 보면 부산 선사시대가 훨씬 넓게 보입니다. 부산은 처음부터 바다만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강과 하구, 섬과 해안이 함께 만든 생활권이었습니다.

가덕도와 해안 생활권

부산 서쪽의 가덕도 일대도 선사시대 부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입니다. 가덕도는 낙동강 하구와 남해 바다를 잇는 위치에 있습니다. 해안 이동과 어로 활동, 주변 지역과의 교류를 생각할 때 중요한 지리적 거점입니다. 부산의 신석기문화를 소개하는 전시 자료에서도 동삼동 패총, 범방동 패총과 함께 가덕도 장항 유적 출토품이 언급됩니다. (cpn문화유산 문화재TV)

이것은 선사시대 부산 사람들이 한곳에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고, 섬과 하구를 이용했으며, 바다를 통해 다른 지역과 연결되었습니다. 선사시대 부산의 바다는 장벽이 아니라 길이었습니다.

부산박물관에서 보는 선사시대 부산

부산의 선사문화를 더 넓게 보고 싶다면 부산박물관도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부산박물관은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관련 유물들을 통해 부산의 초기 역사를 보여 줍니다. 해운대 좌동·중동 일대의 구석기 자료, 동삼동·범방 패총의 신석기 자료, 수영강과 낙동강 주변의 청동기 자료를 함께 보면 부산의 역사가 바다 생활에서 농경과 정착, 더 복잡한 사회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유물이 곧 말입니다. 토기 한 조각, 돌칼 하나, 조개팔찌 하나가 당시 사람들의 삶을 대신 말합니다. 그래서 선사시대 부산을 이해하려면 박물관과 유적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책으로만 읽는 역사보다, 유물 앞에 섰을 때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선사시대 부산이 남긴 의미

선사시대 부산은 화려한 왕조의 역사도 아니고, 전쟁과 영웅의 역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대보다 부산의 본질을 깊이 보여 줍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바다와 함께 살았습니다.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고, 토기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죽은 이를 묻었습니다. 때로는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과 교류했습니다.

동삼동 패총과 범방동 패총은 부산이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와 강을 중심으로 살아온 도시였음을 알려 줍니다. 부산의 역사는 항구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조개껍데기와 토기 조각, 낚싯바늘과 화덕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부산의 바다를 바라볼 때, 그 바다에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선사시대 부산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가장 오래된 밑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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